윤석열 대통령, 전국 비상계엄령 선포...
윤석열 대통령은 3일 오후 10시 긴급 대국민 담화를 통해 전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 윤 대통령은 "자유대한민국을 수호하고 반국가 세력을 척결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밝혔다.
[12월3일 오후10시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윤대통령 공중파TV화면 캡쳐]
윤 대통령은 담화에서 국회가 "범죄자 집단의 소굴"이 되어 입법 독재를 통해 국가 시스템을 마비시키고 있으며 자유민주주의 체제 전복 기도 세력이 존재하고 북한 공산세력의 위협으로부터 국가를 수호할 필요성있다고 비상계업령 선포이유를 설명했다.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령과 관련해 반국가 세력 척결 의지 표명하고 국민 불편 최소화에 주력할 것을 약속했으며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에 국가 정상화 추진을 언급했다.
우리나라는 1948년 8월 15일 정부 수립 이후 지금까지 총 10번의 비상계엄령을 경험했다. 국가 안보와 공공질서 유지를 명목으로 선포된 이 비상조치는 주로 정치적 격변기에 등장했으며, 한국 현대사의 주요 전환점마다 중요한 역할을 했다.
최초의 비상계엄은 1948년 10월 21일 여순사건을 계기로 선포되었다. 당시에는 계엄법이 제정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일제강점기의 '합위지경'을 적용했다. 계엄법이 정식으로 제정된 것은 이듬해인 1949년 11월 24일이었다.
한국전쟁 이후 선포된 계엄령들은 대부분 정치적 사건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1960년 4월 19일 4.19혁명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서울 지역에 계엄령을 선포했고, 이는 곧 전국 주요 도시로 확대되었다.
박정희 정권 시기에는 여러 차례 계엄령이 선포되었다. 1961년 5월 16일 군사쿠데타 당시, 1964년 한일협정반대투쟁 때, 그리고 1972년 10월 유신체제 선포 시에 각각 계엄령이 발동되었다.
가장 오래 지속된 계엄령은 1979년 10월 27일부터 1981년 1월 24일까지 456일간 유지된 것이다. 이는 박정희 대통령 사망 이후 신군부에 의해 선포되었으며,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전국으로 확대되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1980년 5월 17일 신군부가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한 것에 대한 저항으로 시작되었다. 당시 광주 시민들은 헌정 파괴와 민주화 역행에 항거했으나, 신군부는 공수부대를 투입해 폭력적으로 진압했다.
비상계엄령은 대통령이 전시,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 시 선포할 수 있는 국가긴급권이다. 그러나 이는 국회의 동의를 필요로 하며, 국회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해제를 요구할 수 있다.
한국의 비상계엄 역사는 민주주의 발전 과정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초기에는 국가 안보를 위해 사용되었으나, 후에는 정권 유지의 수단으로 악용되기도 했다. 1980년대 이후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비상계엄의 남용은 크게 줄어들었다.
이번 비상계엄령 선포로 인한 정치적, 사회적 파장이 예상된다. 야당과 시민단체의 반발, 국제사회의 반응 등이 주목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계엄령의 구체적인 시행 방식과 해제 시점 등에 대한 관심도 높아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