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출신 레오 14세, 제267대 교황 즉위
전 세계 13억 가톨릭 신자들의 새로운 영적 지도자가 탄생했다. 8일(현지시간)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에서 진행된 콘클라베에서 미국 출신 로버트 프랜시스 프레보스트(69) 추기경이 제267대 교황으로 선출됐다. 그는 즉위명으로 '레오 14세'를 택했다.
[최초 미국출신 14대 교황으로 선출된 로버트 프랜시스 프레보스트(69) 추기경 사진=교황청]
이번 교황 선출은 전문가들의 예상을 뒤엎는 결과로, 콘클라베 시작 후 채 24시간도 되기 전에 흰연기가 올라오며 빠른 합의를 이뤘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콘클라베는 라틴어로 '열쇠로 잠근 방'이라는 뜻으로, 외부 영향 없이 순수하게 성령의 인도에 따라 교황을 선출하기 위한 오랜 전통이다. 이번 콘클라베에는 전 세계에서 모인 133명의 추기경들이 참여했으며, 이 중 108명은 전임 프란치스코 교황이 임명한 인물들이었다.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이 장엄하게 자리한 시스티나 성당에서 추기경들은 "내 앞에 오직 하느님만을 두고 투표한다"는 선서를 한 뒤 투표에 임했다. 바티칸 관계자에 따르면 첫날 오후 7시 30분에 시작된 투표에서부터 프레보스트 추기경에게 표가 몰리기 시작했으며, 다음 날 오전 네 번째 투표에서 필요 득표수인 89표(3분의 2 이상)를 훌쩍 넘는 지지를 얻어 교황으로 확정됐다.
현장에 있던 필리핀의 파블로 비르질리오 시옹코 다비드 추기경은 "당선 순간 프레보스트 추기경은 그저 앉아 있었다. 누군가 그를 일으켜 세워야 했다"며 "우리 모두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고 증언했다.
레오 14세는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페루에서 20년 이상 사목 활동을 하며 남미와 깊은 인연을 맺었다. 유창한 스페인어 실력과 라틴아메리카 교황청 위원회 수장 경력은 남미 지역 추기경들의 강력한 지지를 이끌어냈다는 평가다.
교황청 내부에서는 그를 '가교 역할'을 할 인물로 평가한다. 독일 출신 게르하르트 뮐러 추기경은 "그는 분열적이지 않다. 진영 간 갈등을 치유할 수 있는 인물"이라고 평했다. 실제로 레오 14세는 신학적으로는 전통을 중시하면서도 사회 문제에 있어서는 실용적 접근을 보여왔다.
종교학 전문가들은 레오 14세가 젠더 문제와 생명윤리에 있어서는 전통적 가톨릭 교리를 고수하는 보수적 입장을 취하지만, 이민·난민 문제와 기후변화, 경제적 불평등 해소에는 적극적인 목소리를 낼 것으로 전망한다.
바티칸 전문 저널리스트 마르코 폴리티는 "레오 14세는 교리적 순수성과 현대 세계와의 대화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려 할 것"이라며 "프란치스코 교황이 시작한 교황청 개혁을 이어가되, 더 많은 교회 구성원들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방식으로 진행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교황 선출 직후 발코니에 모습을 드러낸 레오 14세는 세계 각국에서 모인 신자들을 향해 첫 축복을 전했다. 그는 "분열과 갈등으로 상처 입은 세계에 일치와 화해의 메시지를 전하는 교회가 되길 희망한다"며 "모든 이들, 특히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다가가는 교회가 되겠다"고 첫 메시지를 전했다.
바티칸은 오는 15일 레오 14세의 공식 즉위 미사를 성베드로 광장에서 거행할 예정이다. 이 자리에는 전 세계 국가 원수와 종교 지도자들이 참석해 새 교황의 출범을 축하할 전망이다.
가톨릭교회는 앞으로 레오 14세의 교황 재위 기간 동안 교회 쇄신과 함께 전 지구적 도전에 대한 적극적인 응답을 모색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그가 어떻게 13억 신자들을 이끌어 나갈지, 그의 행보가 세계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귀추가 주목된다.